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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베를린은 냉전의 도시였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하나의 나라를 분단하고 있었습니다. 이념의 장벽은 무너졌지만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스페인 그라나다대학의 호세마리아 고메스 교수는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호랑이가 얼마나 호랑이를 죽이며, 침팬지가 얼마나 서로를 죽이는지 여러 포유류들이 서로의 목숨을 빼앗아갈정도로 폭력적인지를 조사한 것입니다. 1024종의 포유류의 폭력성을 비교했을 때 자신의 종끼리는 전혀 죽이지 않는 종도 있었고 그런가하면 유난히 서로를 죽이는 종도 있었습니다. 가까운 종끼리 서로 비슷한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는 건 동족을 죽이는 폭력성이 인간 뿐 아니라 일부 포유류가 공통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본성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폭력성은 다른 포유류에 비해 6배나 높게 나타났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항상 그래왔듯이 서로를 죽일지도 모릅니다. 어째서 인간은 이토록 폭력적인 걸까요? 하루에도 수없이 들려오는 잔인한 살인사건들이 무감각할만큼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이런 끔찍한 행동들을 할 수가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바로 뇌에 있습니다. 

    폭력의 스위치, 시상하부와 편도체

    우리가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순간 뇌에서는 어떤 반응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먼저는 인간의 뇌구조와 비슷한 생쥐를 통해서 폭력성과 뇌의 반응에 대해서 살펴보는 실험을 진행합니다. 

    인간이 공격성을 유발할 때 뇌가 반응하는 부위들이 있는데 크게 전두엽피질과 편도체, 시상하부라고 합니다. 쥐에게도 이와 유사한 부위가 공격행동이나 폭력적인 행동을 할 때 활성화됩니다. 

    시상하부 내부에 있는 '복내측 시상하부'라고 불리는 영역을 실험했는데 먼저 쥐의 뇌 중 시상하부에 빛으로 자극하면 활성화되는 단백질을 넣습니다. 이후 그 영역을 작동시키고 멈추게 할 조정장치를 넣습니다. 폭력을 일으킬 도화선을 인공적으로 주입한 것입니다. 


    보통의 수컷의 경우는 암컷이 같은 공간에 들어오게 되면 쫓아다니며 교미를 시도합니다. 이는 쥐가 보이는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그런데 폭력 조정장치를 넣은 수컷의 경우 시상하부를 자극하자 암컷을 격렬하게 공격을 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하지만 자극을 멈추게 되면 폭력을 멈추게 됩니다. 이는 '복내측 시상하부'가 뇌 안에서 공격행동을 유발하는 신경 세포의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실험이었습니다. 

    그리고 또다른 폭력스위치는 바로 편도체입니다. 이곳을 통해 인간은 두려움과 공포를 감지합니다. 사람은 두려움과 공포를 느낄 때 종종 폭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종격투기 선수의 인터뷰를 보면 그들 역시도 경기에 올라갈 때 두렵다고 합니다. 두려움 때문에 그 자리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진 적도 있다고 하니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됩니다. 그리고 상대를 생각할 때 내가 호랑이고 상대가 쥐여서 잡아먹어야겠다라는 생각보다는 서로가 쥐가 된 기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상대를 죽이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죽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크다고 합니다. 경기 후 싸움에서 오는 쾌락은 정확히 말하면 더이상 죽거나 다치지 않을 수 있다라는 안도감에 더 가깝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생존본능이 크게 작용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과거 거친 야생에서 살아가던 인류에게도 상대를 제압할 힘과 폭력성은 생존을 위한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살인자의 후손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류의 과거 속에서 폭력성의 근원을 찾고 있습니다. 전중환 진화심리학자 교수는 인간의 마음과 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하고 이익이 되는 방식이 오랫동안 뇌에 축적되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유전자들이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심리적인 것들, 이를테면 성격, 지능, 폭력성들은 수십만년 동안 진화해야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이야기합니다. 
    과거 수백만 년 전 수렵채집 환경에서 식량이나 영토, 짝짓기 기회 등을 놓고 어떤 상황에서는 폭력을 휘둘러 자원을 독점하는 것이 유리한 상황이 많았을 것입니다. 어느 소설가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살인자의 후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먼 과거에는 생존하기 위해 폭력을 쓴 이들이 더 많이 살아남고 그들의 후손들이 우리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이러한 본능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을 해하거나 때리고 심하면 죽이기도 하는 것은 인간의 생존도구였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에 맞서는 뇌의 회로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왜 다르다는 이유로 폭력을 휘두르는가?

    폭력의 회로는 뇌에 깊숙하게 있는 감정을 다루는 뇌입니다.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화학물질이 분비되고 시상하부나 편도체가 자극받을 때 누군가를 해하고 싶다는 마음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게 됩니다. 이러한 폭력의 회로는 내가 속한 집단보다는 내가 속하지 않은 다른 집단일 경우 더 쉽게 작동합니다.  

    매년 5월 볼리비아에 있는 마차라는 곳에서는 틴쿠라는 축제가 여립니다. 서로 다른 마을에 사는 50여 개 부족들이 모여 피를 흘리며 싸웁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틴쿠는 피의 축제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같은 나라에 살고 있지만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휘두릅니다. 
    우리는 항상 나와 너, 우리와 그들로 경계를 나누며 살아갑니다. 인종, 민족, 국적, 지역, 종교, 스포츠 응원하는 팀까지 말입니다. 일단 다른 편으로 나누고 나면 치열하게 싸워 이기려고 합니다. 

    사회신경과학자 제이 반 바벨은 사람들이 타인을 인식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는 인형에서 사람의 얼굴로 점점 변화하는 사진을 보여주고 사진 속 얼굴을 사람이라고 판단하려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에 대한 실험이었습니다. 


    우리 뇌는 내가 속한 집단과 다른 집단 사람을 어떻게 구별할까요? 바벨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진 속 얼굴이 우리 집단에 속하고 그 집단에 소속감을 느낀다면 인형에 가까운 얼굴도 사람이라고 인식했습니다. 하지만 타인 집단에 속한 사람의 얼굴을 볼 때는 사람으로 보기까지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이는 우리 집단에 속해 있는지에 대한 여부가 사람들의 판단력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아낸 것입니다. 
    자신의 집단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때는 후부상측두구(pSTS)라는 곳이 활성화되는데 이 영역은 상대방이 인간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곳입니다. 

    우리의 뇌는 상당히 편파적으로 작용하며 다른 집단의 사람들을 아주 쉽게 비인간화했습니다. 타인 집단에 대한 선동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도 존재합니다. 집단 학살이라든지 집단 폭력들이 대표적인 사례들입니다. 

    과거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는 유대인 집단을 쥐나 바퀴벌레와 같은 해충에 비유해서 선동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른 집단의 사람들을 열등하다고 여기며 인권보장도 필요없고 가혹한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968년 미국 초등학교 교사였던 제인 엘리엇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진행합니다. 그녀는 반학생들을 파란색 눈과 갈색 눈으로 나누고 푸른색 눈을 가진 아이들이 훨씬 더 뛰어난 아이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두 집단으로 갈라졌고 몇 분전까지만 해도 잘 지내던 아이들이 서로 비난하며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협동적이고 괜찮았던 아이들이 이 실험을 통해 심술궂고 잔인하게 친구들을 차별적으로 대했습니다. 겨우 실험 15분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아이들의 실험은 그때로 끝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차별적인 행동을 합니다. 더 나아가 폭력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과오를 반성하지 않은 인류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편을 나누고 왜 다른 편에게는 잔혹할 수 밖에 없는 걸까요? 내가 안전하려면 내가 속한 집단이 경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집단에 속해 다른 집단과 경쟁하며 싸울 때 폭력의 회로는 폭주하는 한편 우리 뇌에 다른 부분은 서서히 느려지고 활동이 둔화됩니다. 이는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난 과오를 반성하지 않고 반복한 행동은 인류의 재앙을 낳았습니다. 

    1939년 유대인 학살 600만명, 1975년 캄보디아 킬링필드 200만명, 1999년 르완다대학살 100만명, 2003년 이라크전쟁 67만명, 2011년 시리아내전 37만명, 2020년 지금까지 이어지져 여전히 과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선사시대 유적지 유골의 평균 15%정도는 타인에 의한 폭력으로 살해를 당한 것입니다. 반면 인류 역사상 가장 폭력적이었던 1,2차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이 있었던 20세기에는 전쟁으로 인한 기근이나 질병을 다 포함해도 사망자의 비율이 전세계 평균 3%정도입니다. 비율상 폭력이 5배 정도 줄었다는 것입니다. 유럽의 살인률 역시도 지난 몇 세기동안 급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중세시대에 비하면 1/35 수준이라고 합니다. 


    비국가사회의 평균 사망율과 20세기 전세계 평균 사망율 역시도 1/5로 극명하게 차이가 납니다. 이는 과거에는 평화롭고 사람들이 착했다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통계학적 수치입니다. 
    과거에는 오히려 훨씬 더 폭력적이어서 타인에게 죽임을 당할 확률이 높았지만 중앙집권적인 통치체제와 국가 권력이 성립하게 됨에 따라서 법제화 되면서 폭력이 비약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실제로 폭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제어한 기제는 상호협력과 평화를 유도하는 공감, 도덕심, 자기 통제, 이성, 상대방을 죽이거나 상처를 입히는 것보다는 상대방의 번영을 나의 이득을 위해 바라게 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이 다른 포유류와 달리 폭력을 제어할 수 있도록 제도나 법제화 시킨 근본적인 이유는 과학과 인본주의가 폭력 감소와 인간 생활의 전반적인 향상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이성' 때문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힘입니다. 과거에 위협적인 경쟁상대를 폭력을 통해 생존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면 현대를 사는 우리는 내가 직접 맞서 싸우기보다는 국가나 제도가 그 일을 하게 만들어 인간다운 해결책를 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법과 제도를 만든 합리적인 이성과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을 이끄는 공감능력이 우리를 지켜주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성 역시 우리 뇌의 한 부분입니다. 

    결론

    타인을 공격하는 순간 우리의 폭력회로는 질주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질주를 멈출 브레이크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폭력을 멈출 수 있는 회로가 전전두엽입니다.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통제하고 인간의 이성을 지켜주는 곳입니다. 뇌에 가장 바깥 영역으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이성의 뇌입니다. 이성의 뇌인 전전두엽이 작동하게 되어 우리는 내 편을 넘어서 타인을 공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합니다. 무언가를 배우고 알게 되면 변화하지 않을 것 같았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우리 스스로를 깨울 또 하나의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전 세계 77억 인류 모두가 미토콘드리아 이브라는 한 여성의 자손이라는 믿기 힘든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단유전학자 정충원 씨는 미토콘드리아 이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미토콘드리아 이브라는 것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가진 미토콘드리아 염색체의 공통 조상이었던 사람을 말합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작은 기관입니다. 남자, 여자할 것 없이 우리 모두에게 미토콘드리아가 존재하지만 미토콘드리아DNA는 오직 어머니를 통해서만 유전이 됩니다. 이것은 인류의 기원을 찾는 아주 중요한 열쇠입니다. 


    저에게 있는 미토콘드리아는 제 모친에게서 왔고, 제 모친의 미토콘드리아는 외할머니에게서 왔습니다. 계속해서 어머니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미토콘드리아의 근원을 찾다보면 결국 모든 인류의 어머니미토콘드리아 이브를 만나게 됩니다. 20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한 여성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사람은 현재 지구상에 80억 명 가까이 살고 있는데 침팬지와 고릴라와 같은 종들은 많아야 10만 마리의 개체수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침팬지 50마리, 100마리가 사는 같은 무리 안에서 매일 얼굴을 보고 사는 두 개체를 뽑아 침팬지 사이의 유전적 차이를 비교했을 때 우리와 아프리카인이 가지고 있는 차이보다 훨씬 더 커다란 유전적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은 아주 최근에 숫자가 많이 늘어난 종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아프리카 바깥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유라시아 사람들의 공통 조상은 약 6만 년 전에 중동에 살고 있던 겨우 몇천 명의 사람들로 수렴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현재는 겉으로 달라보이고 문화적으로는 다르게 살고 있지만 유전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고 집단 사이의 차이도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유전적 관점으로는 한 가족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는 태초에 하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수 없이 구별짓고 편을 나누고 폭력을 저질렀습니다. 우리의 폭력 회로가 언제 켜질지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는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현재도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고는 있지만 과거에 비하면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인류가 이성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후손들 평화로운 뇌를 지닌 종으로 진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악이 아닌 최선의 시절에 우리 인간 해 온 것들을 기억한다면 우리 후손들의 세상은 지금보다 더 평화로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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